[Seminar] 마야문명의 신비_210303
———
‘마야 문명의 신비’라는 제목에 강하게 이끌려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 라이브를 듣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시대, 다른 문명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의 낚시대에 ‘마야’라는 키워드가 걸려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강의 내용을 일부 빌려보자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고서 더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유사점도 발견할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교수는 이것을 우리 일상 언어로, ‘친구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친구가 많다’ 또는 ‘멕시코의 동사무소 대기 시스템’을 예로 들며 타국의 행정시스템은 우리나라의 체계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당시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교수를 보며 멕시코 동사무소 직원을 상상하며 강의를 듣다가, 문득 그들도 어떠한 이유로 인해, 그들도 표면적으로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행동 양상을 띄는 것이 아닐까?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문명은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직접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결과 양상에 대하여 추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대 문명을 아는 것은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아는 것이라는 말이 강하게 마음에 남았다.
강의자료에서,
금속이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금속 농기구와 무기 등의 발명과발전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아메리카 문명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
금속류라는 - 기존에 이들이 사용하였던 석기에 비하여 다루기 쉬우며 강하고 튼튼한 물질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마야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무기나 농기구를 만드는 것보다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드는 데에 더 전념하였다. 금속도구를 통해서 더 효율적인 농사가 가능하고 그렇게 더 많은 수확을 얻어 부유하게 되는 것에 큰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혹은 집착하지 않았다.
...
분명 마야 사람들은 바퀴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잘 만들어진 포장도로 시스템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고작 그 편한 바퀴의 원리를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드는 데에만 사용하였다. 모든 짐들은 끈으로 묶어서 이마에 걸어 운반하였다.
....
농사를 많이 지어 부자가 되거나 전쟁에 나가 승리를 하여 명예와 권력을 손에 넣는 것보다 하늘을 보고 천체를 관측하며 달력을 계산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크고 중요한 가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야인은 구석기, 신석기 그리고 청동기와 철기의 존재와 활용을 알고 있음에도 부서지기 쉽고 무기로 활용되기엔 어려운 흑요석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레를 이용하면 다른 더 많은 사람이 도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되므로 직접 이마에 짐을 묶어 다녔다는 점도 나에게 정말 큰 감명을 주었다. 전쟁과 관련한 성곽 같은 유적지도 없다고 한다.
현대ㅡ 혹은 서구식 관점에서 이를 생생하게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법 하다. 나는 특히 윗 대목에서 ‘집착하지 않았다’라는 서술구가 확 꽂혔다. 눈여겨보고 있는, 그리고 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주고 있는 작가의 중심 개념-안티포커스-과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비상식이라고 치부되거나 후지다 라는 평가를 받고 끝내기엔 너무나 많은 편견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과 정복을 통한 삶의 방식도 물론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마야인의 삶의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다양성의 이해’라는 말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같은 금속물질의 발견에 대한 결과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그저 “저 사람들과 우리들은 참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저 사람들은 참 이상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원시적이다’ 혹은 ‘후진적이다’라는 말로 이해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로부터 파생된 서양 문명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위주로 교육을 편성하여 왔다. 상대적으로 마야나 잉카 문명에 대한 언급은 몇 년 전의 나로서도 아주 생소한 느낌을 주었었다. 그러나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나의 직관대로 나의 삶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왠지 이러한 고대 문명의 흔적들을 알고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현재에 고착하고 있는 문제들은 어쩌면 고대의 문명에서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리라고 여겨졌던 명제들이 한순간에 뒤바뀌어 수 차례의 패러다임 전환이 존재했음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현재에 대다수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현상이나 사실 기술이 절대적 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도 있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