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 창작도 자연의 일부다.
지난주 수요일, 몇십년간 여전히 똑같은 문 뒷면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오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젯소칠을 시작했다
나름의 배려(?)로 벽면의 보라색 느낌을 연결시키면서도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벽면 색과 완전히 동떨어진 화려한 그림을 그리고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벽에 무언가 다른 그림이 덧입혀지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연보라를 여러층 입히기 시작했다. 벽화 작업이나 캔버스 30호 이상의 대형 작업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이 문은 아주 좋은 캔버스가 될 수 있었다
젯소칠을 하며 가려지는 원목의 느낌에 짜릿한 즐거움을 느꼇다. 그러다가 가족이 하나둘씩 집에 돌아오며 문을 열려고 했다. 작업이 끝나기 전에는 열지못하게 막았다
작업을 마친후 방안에 들어와 작품을 본 가족들은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읺았지만 석연치 않은 변화에 만족하는듯하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 느낌이 좋은데 왜 페인트를 칠했냐는 반응이었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망쳐놓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나는 물감을 칠하면서 얻은 즐거움이 컸기에 더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닫았다. 무슨 말을 하든지 수긍했다. 함께 사는 집에서 미리 허락을 받지 읺은 이유도 있었기때문에 충동적인 독단에 대한 반성도 조금 했지만 이것 이상의 논쟁으로 번지게 하지 않았다
이곳은 이미 칠해졌으니 어쩔수없지만 다른 곳은 더이상 허락하지 않겟다는 입장을 내비췄다. 나는 반응이 이정도로 끝난 것 만으로도 참 다행이고 김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에 인색한 모습에 답답한 기분도 들엇다. 나만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그땐 정말 마음대로 해야지! 자유롭게 행하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작품에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펼치는 상상도 했다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기에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겠지?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말에.. 벽화마을이 문득 떠올랐다. 관광지나 테마파크로 거듭난 장소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것은 사람 손을 타지 않는게 좋다는 것인데, 어떤 측면에서는 이 말도 맞다.
그렇지만 시각적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인간을 통해 인식되며 가치를 널리 알리는 행위이다. 모든 예술가가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했다면 아무것도 창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 작품은 개별적이고 관련없는 것들이 한군데 모임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인공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말에서 도시의 건물도 숲이랑 똑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저 문에 작업한 현 상태는 아직 마음에 완전히 들지 않는다. 주변반응에 민감한 편인지 더 진행할수가 없었다. 작업을 마땅찮게 여기는 이들 사이에서 꿋꿋히 눈치보지않고 실행한다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그래도 이전까지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집의 일부분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했다. 평소에는 있는지도 거의 인식하지도 않았던 면이었지만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자 하나 둘 모여들어 어느 정도 서서 그림을 보는 현상이 재미있었다. 또 일방적으로 보이는 문 앞면과는 달리 굴곡이 없다는 사실도 보는 이에게 새로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새로운 사실을 관찰하고 발견하게 만드는 매개체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문 위의 작업은 언젠가 달라질수있을 가능성만을 남겨두고 잠시 휴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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